책임감
18 Aug 2021책임감
스핑크스의 문제라면 누구나 알만한 유명한 내용이다. 소포클래스가 쓴 최고의 비극에 등장하는 오이디푸스는 이 스핑크스의 문제를 풀고 테베의 왕이 되었다. 하지만 자신이 과거에 죽인 자가 자신의 아버지임과, 결혼한 아내가 친모임을 알게 된 오이디푸스는 자신이 저지른 죄를 다시는 봐서는 안 된다며 스스로의 눈을 뽑고 테베를 떠나게 된다.
안타까운 이 비극이 시사하는 바는 뭘까? 신의 예언은 어마 무시하다? 자신의 잘못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오이디푸스는 자신의 눈을 뽑았다. 어쩔 수 없었던 모든 상황들, 무지마저도 모두 자신의 잘못임을 인정하는 자세. 스스로 책임지려는 자세.
조금은 다른 이야기를 해보려고 한다. 인류가 핵전쟁으로 치달을 뻔했던 쿠바 미사일 위기 직후의 1962년 일이다. 물건을 만드는 사람들은 보통 자기가 무얼 하고 있는지 모른다. 로스앨러모스 프로젝트(우리가 잘 알고 있는 히로시마 원자폭탄을 만들어 낸 프로젝트)를 지휘했던 로버트 오펜하이머는 다음과 같이 얘기했다. “무언가 매력적인 기술이 눈에 띄면, 우리는 일단 달려들어 일을 벌인다. 그러고는 그 기술이 성공한 뒤에야 그것으로 무엇을 할지 따져본다. 원자폭탄은 이런 식으로 만들어졌다.”
20세기 전반부에는 7000만 명이 전쟁터와 집단 수용소, 강제노동 수용소에서 죽어나갔다. 대량 살상을 위한 맹목적인 과학과 무지막지한 관료주의가 만들어낸 합작이다. 관료들에게는 주어진 일을 해내는 것만이 문제였고, 죽음의 수용소를 기획한 나치 책임자 아돌프 아이히만은 그러한 관료주의의 화신이었다. 시키는 일만 했을 뿐이라는 그들은 그들 자신이 무얼 하고 있는지를 몰랐을까.
오이디푸스와 2차 세계대전 당시 과학자들과 관료 사이에는 어떤 차이가 있을까? 바로 책임감이 아닐까 싶다. 스스로에게 내려진 책임과 그것을 책임지려는 자세. 그렇다면 개발자가 가져야 할 책임감은 무엇이 있을까?
현대의 소프트웨어(어플리케이션)가 전파할 수 있는 영향력은 어마 무시하다. 개발자가 어떠한 문제를 해결한다고 해서 그 문제 하나만 해결되는 것이 아니라 그 전파력은 넓게 퍼져 커다란 가치를 만들어내게 된다. 주어진 임무가 작더라 하더라도 나비효과로 만들어 낼 가치가 있는 일이다. 일 자체를 잘하려는 책임감보다는 어떤 가치를 세상에 전달할지를 끊임없이 알려고 부단히 노력하는 책임감이 중요하지 않을까 생각된다.